주간시흥신문 기사입력  2008/10/26 [14:41]
야구의 볼모지 시흥시에 혜성같이 나타난 배금섭
야구의 명문도시 시흥을 만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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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흥시야구협회 회장 배금섭
시흥에서 나서 시흥에서 자라고 시흥에 뿌리내린 시흥 토박이


그는 달리기면 달리기 축구면 축구의 일인자로 몸으로 하는 어떤 경기든지 거칠 것이 없었다. 어린시절에도 운동을 좋아하는 그는 시흥시 새말 동네 고향집 마당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듬직하게 우뚝 솟은 소래산의 맑은 정기를 받은 탓인지 소년은 늘 활기차고 정직하며 씩씩했다. 아침이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래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가 친구들과 운동장을 한바퀴 달려 돌고야 교실에 들어갈 정도로 부지런하였고 운동을 좋아했다.

1960년대 그 시절 어느 누구나 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배금섭에게도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참 힘들었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아래서 어린 시절에도 늘상 부모님의 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중2때 부친이 돌아가시고 집안의 장남으로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하는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
야구와의 인연은 우연치 않게 소래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 감독에게 발탁되어서 동인천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교내에서 덩치도 좋았고 달리기도 잘하였고 운동신경이 잘 발달된 데다가 체력조건이 아주 좋아서 체력 테스트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야구에 몰두하게 되었고 이제부터 나의 인생은 야구인생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야구에 몰두 하였다. 그리고 집안 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야구 특기장학생으로 등록금을 면제 받을 수 있어서 진학을 하려면 야구에 몰두하여 좋은 성적을 내야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배금섭에게는 야구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고등학교를 인천고등학교 야구 특기생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커다란 꿈도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인천고등학교 2학년 시절 야구를 하다가 무릎에 부상을 입어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후 좀체로 낳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야구를 포기해야만 했다. 야구생활을 하던 중고교 시절의 야구 결과를 보면 중학교 때 전국체육대회 4강 진출하였으며 고등학교 시절에 전국대회 준우승을 4번 하였다.

야구를 포기하고 나니 사는 일이 암담하여 많은 방황을 했다. 도저히 마음을 잡지 못하여 시흥에서 인천 가는 21번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오기를 수도 없이 하였다. 참담한 마음을 이루 달랠 길 없어 갈등과 방황의 시절이었다. 지금 아쉬운 것은 그 당시 수술을 하고도 아프던 무릎이 지금은 멀쩡하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같이 멀쩡하다면 지금까지 야구의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군복무는 가정 형편상 일반 군복무를 할 수가 없어서 방위를 받게 되었고 그나마 남은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6개월 전역을 하였다. 농사일 대신 무역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어느 정도 직장에 안정을 찾고 나서 다시는 못 할 줄 알았던 야구를 회사에서 직장인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 10년 후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개인 사업을 하게 되었다. 이동통신 초창기에 시흥시 신천동에 ‘sk 텔레콤’ 대리점을 시작하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시절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직장인 야구대신 시흥지역에서 사회인야구를 하게 되었다. 야구의 볼모지이며 고향인 시흥에서 야구의 붐을 일으켜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2002년 시흥시에는 사회인 야구 30개 팀 15조가 모여서 시흥야구협회를 창립하여 초대회장이 되었다. 창립취지는 시흥시에 확산되어 가는 야구동호인 충의 화합과 사회체육으로서의 야구 활성화를 위해 인근 타 시에 비해 뒤떨어져있는 시흥시야구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야구협회를 이끌어 가다보니 시흥시 정왕동에 위치한 전용구장 하나로는 생활권이 다른 신천동 부근의 야구동호인의 활동 및 엘리트체육의 선수를 육성하기가 곤란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협회에서 시화공단 내 소망공원에 전용구장을 마련하게 되었다.

야구를 통한 체력단련과 건강증진 회원 상호간의 친목 및 상부상조 건전한 여가 활동 등 모범적 사회단체로의 지향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야구만이 아닌 이상적인 활동을 위해 엘리트 체육선수 육성 및 학교 야구부 창단 등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시흥시 야구 활성화에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어린 날 못다 이룬 야구에 대한 꿈을 시흥시 내 고향에 펼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뼈를 묻어야 할 고향 시흥시에 야구를 살려서 야구명문도시를 만드는 일이 꿈이 되었다. 아직 내세울 게 없는 시흥시를 야구를 통해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는 체육을 통해서 시민이 단합되길 바라고 있다. 시흥시에 종합운동장을 신설해서 화합의 한마당을 열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크다. 정왕동에 야구장 1개소로는 야구장이 부족하여서 정식 야구장이 신설되면 30개 동호회와 초. 중. 고생까지 다 유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식 야구장이 신설 되었으면 하는 바램 또한 크다.

야구협회에서 엘리트 선수를 키우려면 기술과 자원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사회인 야구가 활성화 되어야 모든 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며 현재 시흥야구협회의 존재를 아주 귀하게 여기고 있다.

시흥시에 야구 엘리트 인재를 키워야겠다는 일념은 굳건하여 2005년 소래초등학교 야구팀을 창단하고 기술과 자원을 보조해주고 있으며 올해에는 소래중학교에도 야구단을 창단하여 이 지역 학생과 지방 학생의 스카웃으로 팀을 구성하여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어 곧 좋은 낭보도 기대되고 있다. 배회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팀에 시흥선수가 꼭 있어야한다는 철칙으로 선수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살아온 인생관은 진솔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 안주고 마음을 다하여 살아야한다고 하는 그의 얼굴엔 늘상 함박 같은 웃음이 보는 이의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바쁘게 시간을 쪼개어 인터뷰를 하는 그는 연신 여기저기서 전화가 온다. 사업상 일이 바쁜가 보다는 궁금증에 야구협회가 30여 팀이 되다보니 내 사업보다도 협회 일이 더 많다고 하면서 만면에 웃음을 짓는다. 야구에 대한 그의 정열은 분명 시흥을 야구명문도시로 만들고 말 것이라는 예감을 예감하기에 충분한 것 같아 보인다.

 
경력
 
시흥시 야구협회 회장
시흥시 시장기 경기도 초등학교 야구대회 유치
소래초등학교 야구부 창단
우수직장야구대회 타격상 1위 2연패 1995~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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